열렬한 감정들이 좋다.

감정들이 순수하고 뜨겁게 부딪히고 엉켜섞이는 걸 보고 싶다. 열렬할수록 좋다.
자신을 확 내던지면서까지 상대를 미치도록 목마르게 원하고, 서로 등을 맞대고 지킬 수 있는...

일반소설이건 BL이건 로맨스건 동인물이건 혹은 다른 무엇이건 다 상관없다.
모든 이야기는 환상을 담고 있고, 작가가 몸담고 있는 사회 권력 구조 속의 가치관을 내비치기 마련이지만.
어차피 꿈을 꿀 거라면 나는 그 환상들이 다정하고 아름답기를, 뜨겁고도 부드럽기를 바란다.
(사소한 현실이 환상보다 감미로울 수 있겠지만, 싸이코가 15년을 독수공방한 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패스.)

처음 '야수의 날'을 읽었을 때. 첫 인상은 썩 내 취향이라고 할 수는 없었는데도, 어째 끝까지 다 읽기 전엔 잘 수가 없어서; 새벽 4시가 넘어서야 불을 끌 수 있었다. (솔직히 이 쪽 부류의 글들에는 책을 덮자마자 지금 뭘 읽었더라- 하게 될 만큼 밋밋하고 희미한 글들도 상당히 있어서, 읽기 시작할 때에는 크게 기대하지 않으려 한다;)

읽으면서 딱히 엄청나게 마음에 들었다든가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대체로 폭력물 자체가 취향이 아님),
다음 날 세면대에 물 틀어놓고 거울 쳐다보다가 문득 갑자기 '야수의 날'의 한 장면이 너무나 선명하게 떠올라서 스스로에게 놀랐다;

피에 젖어 가쁜 숨을 내뱉으면서도, 상처입은 몸으로 눈을 번쩍번쩍 빛내며 직시해 오는 강렬한 이미지.
주위가 자신과 다르다는 이질감과 외로움 속에서, 유일하게 동등하게 마주볼 수 있는,
세계를 나누어 호흡하고 웃을 수 있는 상대에의 갈구. (이거 Broken Wings에서도 다루어졌던 테마잖아;;;)
"너는 나와 같아."

후끈한 열기를 품고 뜨겁게 솟구치는 피와, 격렬하고 치열하게 소용돌이치는 감정이 머금는 색정.
(혹시 그래서 이 계열에 유달리 폭력적인 설정 환경이 많은 것인가...?;; 위험하고 나쁜 남자의 매력~ ^^;)
격렬하고 치열하게,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행동으로 나타낼 수 있는 상황을 필요로 하는 건지도... 싶다.

좋았던 글로 기억에 오래 남아있는 것들.
Broken Wings, Frozen, 사나운 새벽.
야수의 날, 천둥이 말하는 것, 슬픈 열대, 13.
(아무래도 stan님의 이 책들은 모아야겠다...; 13을 보고 결심 ^^;;)

아무래도 내가 흐물흐물 약해지는 뽀인뜨인 듯 싶은 요소들.
아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티내지 않는 상냥함을 발휘.
지켜야 할 것에 확실히 임하고, 결코 비겁하거나 뒤로 물러서는 일 없이 뜨겁게 불태운다.
강한 것에는 진면목을 드러내어 강하게 맞서고, 약한 것에는 부드럽고 포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