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잘 마쳤습니다.

새로운 주소와 집 사진 등은 비번을 걸어 올려놓을 테니, 필요하면 따로 얘기해 주세요.

이사한 후 컴퓨터 연결하고 자판 테스트로 처음 친 단어는 "감사합니다".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메모를 남겨둡니다.

일본에서 생활할 때에 「他人に弱みを見せないように。」라는 충고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세상 속에서 부대끼며 사는 데에 지칠 때면 저절로 뇌리에 떠오르는 문구가 되었네요.

매일매일 집을 구하러 돌아다니며 지금 상황에서 무엇이 나의 약한 부분인가, 앞으로 이런저런 싫은 상황을 다시 겪고 싶지 않다면 내가 뭘 해야 하나-를 생각했지요. 좌절감과 거절, 경제적 압박을 다루는 법은 여전히 배우는 중.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을 때야말로 저런 부분들을 잘 넘겨야 하는데 말이예요...
물정 돌아가는 걸 잘 모르기 때문에 그걸 익히는 과정에서 어리숙한 사람을 뜯어먹으며 사는 부류의 사람들을 마주쳤고(이건 뭐 어느 사회에나 있는 것 같고, 그 사회 속에서 자신의 위치-랄까 의지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에 따라 마주칠 일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으려니-), 미국에 보증인이 되어줄 아무런 연고가 없기 때문에 1년치(간혹 6개월) 집세 선불이 조건이 되는 것이고(거기에 보증금과 부동산 수수료 물면 3-4개월치 더 잡아야 함), 재정적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맨하탄이라는 지역 특수성 때문이기도 하고) 입맛에 맞는 좋은 집을 골라잡기는커녕 선뜻 계약할 만한 조건 자체가 적었고(돈이 올라가니까 마음에 드는 집은 확실히 많아져서 쓴웃음;), 똑같은 사정의 믿을 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더 힘들기도 했고... 뭐 이래저래 이유 없는 일은 없다는 것이겠지요.
아무튼 집 구하고, 룸메이트도 구하고, 정보와 조언을 얻고 물정을 익히기 위해 내 머리로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시도를 다 해봤으니 미련도 없고, 집도 꽤 많이 둘러봤고(같이 다녀본 브로커만도 열명이니), 물정 돌아가는 것도 익히고, 자기 사정 따라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확확 바꾸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이 겪었네요. (어린 사람들이 그러는 거 보면 뭐 나이의 문제도 아니고... 그냥 소름이 끼침. 덕분에 룸메이트도 극적인 과정을 거쳐 바뀌었음. 그것 참... 이런 말 하긴 싫지만, 사람 쉽게 믿으면 안되네요...)

뭐어 내심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어이없는 속셈들에 당하지도 않고, 상처받지도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쓱쓱 넘길 수 있게 된 자신이 스스로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런 이면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건 나도 세속에 물들었다는 얘기 아닌가 싶어 씁쓸하기도 하고, 하도 이리저리 자기 입장과 이익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부대끼면서 신경쓰고 긴장했더니 정신적으로 까칠하달까, 뭔가 좀 질렸달까... 어떻게든 내 힘으로 처리할 수 있는 내에서 잘해보려고만 했지 누구한테 우는 소리나 폐끼치는 소리는 안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힘들고 도움이 필요했던 순간에는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다가 좋은 곳으로 이사했다니까 당장 놀러오겠다는 사람들한테는 아무래도 정 붙이기 힘들 것 같아 괜히 쓸쓸한 기분도 들고. 정말이지... 내 입장에서 같이 봐주고 신경써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 하고 현재의 위치를 다시금 싸늘하게 실감했달까... 우울한 기분으로 거리를 걸으며 그런 생각을 하다가 속으로 울먹울먹하는 나약함을 깨닫고 촤아악! 뭐 괜찮아요. 어차피 고생할 거라는 건 처음부터 알고 시작한 거고, 그것조차도 어렵게 얻은 소중한 기회이고, 나는 안온한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 자신을 단련시키고 싶다고 바랬으니까, 모든 게 다 스스로를 단련시킬 기회인 거지요. 현재 내가 지니고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워 보면 감사할 일들 역시 가득가득이구요.

모르는 건 알면 되는 거고, 돈은 벌면 되는 거고, 사람은 사귀기 나름인 거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다 보면 앞으로는 점점 더 좋아질 거예요.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하겠노라 마음먹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아무것도 저절로 얻어지는 건 없으니까 나태할 시간은 없어, 정신차리고 살아야 해, 다시 되뇌어 봅니다. (요로코롬 되새기지 않으면 눈앞의 하루하루에 급급하다 잊어버려서리... -ㅅ-;)

아무튼,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하나... 몇 단계는 낮아졌던 삶의 질은 다시 확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좋다고 얘기하는 것도 신중하게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네요... (좋은 부분만 보고 부럽네 편하게 사네 어쩌네 하는 소리에 웃으면서 대답해 주기엔 지금 좀 피폐해져 있기도 하고;)
새벽 5시부터 쪼로롱쪼롱 지저귀는 새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건 아쉽지만,
바퀴벌레와 진드기, 빈대와 싸워야 하는 일도 두 번 다시 없기를 바라며 바이바이.
주말에 다니지 않는 지하철에 어이없어하며 특급 역까지 20분씩 차도를 헤치며 걸어가는 일도, 비나 눈, 더위, 혹은 공사 문제로 지하철 안에 한 시간씩 갇히거나 50분 걸리는 거리를 두 시간 걸려 가는 일을 어쩌다가 아니라 한달에도 몇번씩 그러려니-하고 감수하는 일도 이제 모두 안녕~ 재수없으면 전철이 아예 끊기는 일에 발만 동동 구르며 답답해하지 않아도 됨. 빨랫거리를 바로 못 빨고 모아서 짐을 꾸려 장갑 끼고 눈길을 헤쳐가며 빨래방에 가서 두 시간씩 기다려 빨아말려 가지고 돌아오는 일도, 소포 못 받아서 전철로 몇 정거장 떨어진 데다 한참 걸어야 하는 우체국에 가서 한 시간씩 줄 서서 불친절한 응대 받아가며 겨우 찾아 다시 집으로 낑낑 들고 오는 일도, EMS를 일주일만에 받는 일도 이제 없는 거야! (집안에서 하루종일 소포만 기다리며 음악도 못 틀고 있었는데 초인종 안 누르고 그냥 부재중으로 처리한 우체부 누군지 알면 잡아다 패대기치고 싶음;)
옆집에서 새어들어오는 담배 연기가 옷장 안의 옷들에 배어들다 못해 방까지 스며드는 일도, 윗집의 발자국 소리와 물건 떨어뜨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는 일도, 윗집옆집에서 서라운드로 웅웅웅 들려오는 TV 소리에 잠을 설치는 일도, 창문에서 새어들어오는 차가운 겨울 바람에 한 달 내내 감기 달고 사는 일도, 여름이면 내 창문 바로 밑에서 싸움질하고 술먹고 떠드는 소리에 괴로워하며 물벼락을 쫘악 뿌려주고 싶은 충동을 참아야 했던 경험들도 모두모두 사요나라.
아이고 속 시원해라!!!
생각해 보면 난 이미 어려서 밤마다 부엌에 왕바퀴가 우글거리고 방에 쥐가 들어오기도 했던 집에서 진저리치며 살았던 경험이 있었는데...(처음 바퀴를 봤을 때는 뭔지도 몰라서 이모한테 멀뚱멀뚱 저 시커먼 게 뭐냐고 물어봤었군; 벌레 기는 소리에 공포에 떨며 못 자겠다고 훌쩍이며 지쳐 잠든 어머니를 깨우다 혼만 난 적도 있고...) 굳이 떠올릴 이유도 없는 끔찍한 경험치을 미국 와서 새삼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게 될 줄은 몰랐지만... 뜬눈으로 멍하니 벽을 쳐다보며 그런 환경으로 이사가서 자식들을 키워야 했던 부모님 심정도 글썽글썽 떠올려 보고... 두 번 다시 이런 경험을 하지 않으려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생각도 하고...

생각만 해서야 소용이 없겠지만...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기를 바라며, 빈 주먹을 쥐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