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2009.02.09)

당신은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행운을 가지고 있군요. 평생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를 사귀었다는 것은 평생에 가장 큰 사업을 이룬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서로를 소중히 여기도록 하세요.

-後愛 제 1권, Prologue. 당신은 어떤 친구를 가지고 계십니까?
1) 타입 A : 금란지교 형) 도입부에서 발췌 -

어루만져진 마음으로, 잠자기 전에 잠깐 살펴보려고 펼쳐든 책에서 대뜸 이런 말이 나와서,
그 공교로운 우연의 일치(나이스 타이밍!)에 기분 좋게 웃었어요. 네, 늘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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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낮에 비 내리는 산 속을 혼자 우비 차림으로 두 시간 걸으면서 조용히 생각했어요.

그 동안 세상에 부딪쳐 살아오면서 불안과 좌절, 스트레스, 죽어버리는 게 편할 것 같아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잘 다스리고 넘겨 극복하고 인내하는 것에 대해 나름대로 배우고 성장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직도 배워야 할 게 많은 모양입니다. (인간이 덜 되었나벼...)

아직 얼어붙은 얼음이 남아있지만, 물살도 힘차게 흐르는 산골짜기의 개울에 눈과 귀를 빼앗겨 한참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어요. 빨리 봄이 되어주렴...

한참을 걷고 또 걷다 목조로 된 구름다리가 보여서 건너기로 했습니다.
고소공포증이 조금 있는데,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양호해졌어요.
(어릴 때엔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육교 난간에 매달려 아예 주저앉았고, 학교 창밖 내다보는 것도 무서워했죠. 독일 퓌센에서 마리엔 다리에 넙죽 올라가 노인슈반스타인 성 사진을 찍지 못한 이유도 마찬가지;)
하지만 오늘은 뭐 이러다 죽어도 아무렴 어때, 될대로 되라는 식의 기분이었으므로 평소와는 달리 성큼성큼, 난간도 잡지 않고 건너기 시작했지요.
과연 처음엔 거의 무섭지 않았는데, 중간쯤 건너다 밑을 내려다보니 나무판자 사이로 보이는 허공에 갑자기 무서움증이 또 일더군요. 조금 멈칫하다가 고개를 똑바로 들고 다리 끝의 맞은편에 시선을 두고 다시 걸었어요. 묘하게도, 이 다리는 안전하다는 것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갑작스레 느껴졌습니다.

안정적이고 믿음직스럽게 보이는 다리 끝의 종착점. 인생의 성공이나 노력의 댓가가 저렇게 눈에 보이고 곧 잘 도착할 거라는 걸 안다면, 그 여정의 도중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가지 고난과 미혹(디디고 있는 발 밑을 내려다보면 보이는 다리 틈새의 허공)에 괜히 휩쓸려 두려움, 불안, 혼란, 좌절감 등에 빠지지도 않겠지...?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 생각에 빠져 다리를 계속 왔다갔다 되풀이해 건넜습니다. 이제 쾅쾅 발을 구르며 걸어도 무섭지 않아! 싶어졌을 무렵, 다른 사람들이 산길에 나타나 홀로 걷고 있던 구름다리에 같이 올라왔습니다.

그 순간 또 깨달았어요. '혼자' 걷는 다리와 '여럿이서' 걷는 다리가 얼마나 다른 것일 수 있는지를. (다리가 흔들리는 정도가 완전히 다르더군요; 게다가 그 사람들은 다리 중간에서 일부러 폴짝폴짝 뛰기까지!) 어쩐지 웃음이 나오더군요. 그리고 다시 힘차게 걷기 시작했습니다.

내려오는 산길은 눈이 많이 녹긴 했지만 군데군데 완전 빙판길이었어요. 조심해서 걷는다고 했는데, 거의 다 내려온 비탈길에서 한 번 쫙 미끄러져 넘어졌어요. 괜찮아요. 산다는 게 뭐 그런 거겠죠.
씩씩하게 툭툭 털고. 다시 걸어요.

+ 추가 : 또 하나의 우연의 일치. 포츈 쿠키님의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