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킹 서적들에 대한 잡담

베이킹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후 이런저런 관련서적들을 나름대로 많이 구해보았다.
(하다 보니 부엌 살림이 늘어난 것과 마찬가지로 베이킹뿐만 아니라 요리책도 보게 되더라...)
기초입문서부터 고급전문서적까지 가리지 않고 살펴보고 모았는데, 좋았다.
(나는 초보니까 이런 어려운 거 필요없어 했더라면 접하는 세계가 좁아졌겠지...)
레시피와 예쁘게 만들어 보이는 데에만 급급한 책들은 제과제빵의 기본원리에 대해 잘 짚어주지 않기 때문에 어떤 원리로 빵이 만들어지고 재료들이 상호작용하는지 제대로 언급되어 있지 않고 실패해도 무엇이 문제였는지 모르게 된다. 요리는 깊이 알아둬서 나쁠 게 없이 쓸모있는 분야이고.

미국 (영어권 출판)

빵을 주식으로 하는 문화인 만큼, 그 세계가 넓고 깊다.
일본어처럼 빽빽한 한자와 해독이 필요한 가타가나 외래어들과 씨름하지 않아도 술술술 넘어간다.

1. 대체적으로 책이 두꺼운 편, 사진 없이 글자만 가득한 책들이 많다.
대신 책 무게가 가볍고 한 권의 책 안에 수많은 레시피를 꾹꾹 눌러담는 경향이 있지만,
과정샷은커녕, 완성작 사진조차 없이 글자만 빼곡한 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실물을 확인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사면 방심하는 순간 혀를 차게 된다;
기껏 사진이 있더라도 몇백개의 레시피 중 몇십개의 모습만 담겨있는 것도 참 많다.
먹음직스러운 사진이 가득한 거 싫어하는 사람 없던데... 이상도 하지.
출판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 이유가 뭐든 요리책인 만큼 그리 좋게 여길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일반인 대상이 아니라 프로페셔널로 펴낸 서적으로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상세한 설명과 과정샷이 가득하다. 단지 책이 대백과사전 수준으로 무겁고 두꺼울 뿐...♡
(한 번 꺼내들었다 놓는 데만도 허리가 아프다... 크으윽!)

2. 미국인이 저자인 요리책들에서 또 조심해야 할 부분은 입맛의 문제.
대체 왜 이리 심하게 달고 기름진 게 많단 말인가!
채식주의자와 당뇨병환자를 위한 레시피조차 저 마수에서 피해갈 수 없다니!
이대로는 만들 수 없어, 레시피를 싹 수정해야겠어... 생각하다 보면
그럴 바에야 원래의 레시피를 뭐하러 사나 싶어진다.
(애초에 이 동네에서 파는 것들이 죄다 지나치게 달고 기름진 데에 질려서 홈베이킹을 시작했고...)
담백한 빵 종류는 미국 책들 중에도 훌륭한 것들이 많다.
그러나 케익 쪽으로 가면 조심해서 골라야 한다...;
(개인적으로 케익은 프랑스 제과 레시피와 일본 레시피를 선호한다.)

3. 하나 더 꼽자면 양의 문제. 기본적으로 손이 크달까, 양이 많다.
(한국과 일본에서 선호되는 베이킹 틀 크기는 얘들한텐 뭐 이리 작아? 소꿉장난해? 하는 느낌인 듯.)
가족이 많은 게 아니면 만들 때마다 반 이상 선물로 뿌리든가 다 계량변환해 만들어야... ㅠㅠ;

바이링구얼이나 영어로 번역된 책들로만 읽을 수 있었던 프랑스 책들, 모두 아주 좋았다.
제과제빵의 본고장이라면 역시 프랑스. 명불허전의 프랑스. 동네 빵집도 눈 돌아가게 맛있던 프랑스.
불어 공부, 조금씩이라도 해야지.

일본

출판대국답게 간행되는 책들의 레퍼토리가 다양하고, 탐구하는 자세의 책들도 많다.
테마가 세분화되어 있고 두께가 얇은 책이 많다. (책장에 꽂아두면 확 비교가 된다;)

1. 탐스러운 완성사진이야 당연히 필수 덕목! (사진에 낚여서 책 고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
보는 재미가 쏠쏠하기로는 단연 최고. 일본 쪽 책 보다 영어권 책 보면 재미가 없을 지경 ㅠㅠ;
가정에서 매일 빵을 굽는 걸 보며 자라는 문화가 아닌 만큼, '만드는 과정샷이 자세히 사진으로 나와있는' 친절한 책들이 많다. 초보로 발걸음 떼어 독학하는 입장에서는 잘하고 있는 게 맞나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중간중간 체크할 수 있어 그저 고마운 부분. 다 아는 내용인데 계속 책마다 많은 지면 차지하고 나오면 불필요한 부분이겠지만.
독신가구도 많은 만큼 집에서 조물조물 만들 정도의 적은 분량의 레시피도 비교적 많다.
한국 사람 입맛에도 잘 맞는 레시피.

2. 전문지식이 높게 대접받는다. (이건 물론 일본만의 얘기는 아니다) 전문서 가격은 일반서적의 3배.
저자가 외국물 먹었으면(유럽 연수) 더욱 비싼 몸값의 책이 된다.
일본, 중국, 서양 이렇게 분류하기도 하는데, 우리나라처럼 미국에 치우치지 않고 유럽 쪽 동향도 균형있게 다룬다.

3. 빵의 바리에이션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고, 화과자 쪽 동양적인 맛과의 접목도 많다.
서양이 원조인 빵이더라도 요렇게 조렇게 다양한 바리에이션 능력은 일본이 최고인 것 같다.
마크로비오틱 등의 건강 레시피도 많다. (Vegan Baking은 서양 거 볼 거 없고 동양이 최고...)

우리나라

한국의 제과제빵서적들은 아직까지 전문성, 다양성 모두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초급용만 많고... 그것도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아류의 아류로 만든 듯한...
제과제빵의 원리를 짚어주는 전문성이나 독창성은 그다지...
그래도 한글이라 편하게 빨리 잘 읽을 수 있고, 쉽게 접하고 구할 수 있으며,
외국서적들에 비하면 당연히 저렴한 가격이라는 장점들이 있지만.
내가 한국에 있을 무렵 장만했던 건 사브리나 번역서와 김영모 정도였는데(더 살래야 살 게 없었음;),
요새는 해외 전문서를 번역해 나오거나 진짜 전문가가 책을 펴내는 경우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있는 것 같다.
(한국 시장이 작긴 하지만... 부디 그런 책들이 늘어나 주길.
파워블로거 운운하다 대중성을 무기로 펴내는 책들만 범람해서야 쓰겠는가;
<-소위 파워블로거들 레시피로 만들어 봤다 실망만 거듭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인식이 별로 좋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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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르면서 느낀 건데,
미국 출판계에서는 무슨무슨 바이블이라는 제목이 많고,
일본 출판계에서는 무슨무슨 교과서, 대도감, 대백과 류의 제목이 많은 것 같다. ^^;
우리나라는 어떤 제목이 제일 많을까?

괜찮은 한국요리책 (베이킹 아님) 사고 싶은데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