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곳에 대한 잡상일까나?

비가 내리고, 바람이 차가와졌어요. 가을이 가까와진 기분. (맞이하는 마음은 복잡미묘하여라;)
지금 사는 집의 좋은 점은, 침대에 누워 창 밖의 나무가 살랑살랑 바람결에 춤추는 걸 즐길 수 있다는 거예요.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비쳐드는 걸 바라보는 게 좋아요. (평화로운 느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머어엉~)
맑은 새벽에는 달님도 올려다볼 수 있어요. (저번엔 새벽 5시에 눈을 떠보니 보름달이 휘영청 눈앞에;)

수요일 아침에는 바깥에서 웬 백파이프 소리가 유난히 선명하게 들려왔어요.
뭘까 이 현장감은-; 실제로 연주하고 있는 것 같은데? 하고 창 밖을 빼꼼히 내다봤더니 교회 앞에서 어떤
아저씨가 스코틀랜드 전통 복식까지 차려입고서 열심히 불고 있더군요. 야아- 맨하탄 한가운데도 아닌데
여기서 뭐하는 걸까-;; 나가서 말을 걸까 말까- (돈 달라는 거면 뷁인데;) 으음 으음 하는 새에 끝나버렸지만;
한 시간쯤? 서투른 건지 수줍은 건지 아마추어스러운 삑사리가 많긴 했지만, 또 와도 즐거울 듯...
백파이프 소리가 기억의 파편을 일깨워준 덕분에 스코틀랜드 음악 CD들 모아다 듣는 요즈음이지요.

'창 밖' 말인데... 배터리 파크 쪽 맨션에 사는 사람(주식 굴려 사는 일본인. 혼자 월세 2000) 말로는,
매일 창 밖의 탁 트인 전망으로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는 바닷가의 저녁 노을과 일출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종종 열리는 불꽃놀이도 편안히 집안에 앉아서 와인과 함께 즐기고 있다고 하더군요.
(어차피 비쌀 거면 미드타운 한가운데서! 싶은데, 불꽃놀이를 집안에서 즐긴다!는 게 또 구미가 당기는... *.*;)
비단 독립기념일 때뿐만 아니라 종종 크루즈 선상 파티 같은 데서 불꽃 터뜨리는 걸 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고... (헐리우드 스타나 재벌들이 개인적으로 여는 파티 같다는 추측을 곁들이던데...
유람선 파티에 불꽃놀이라니, 이 동네에는 슈리(BASARA)가 많은 모양이지요.)
슈퍼맨 보면 로이스는 옛날판이건, 리턴즈 판이건 간에 전망 좋은 데만 아주 골라서 살더라만서도... ^^;;;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저녁 노을을 사랑했지요. (작가가 파일럿이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창공에서 보는 하늘이 얼마나 다채롭고 아름다왔을까- 절로 낭만을 꿈꾸게 되어요.
그러고 보니 어린 왕자도 뉴욕에서 쓰여졌다죠. 생텍쥐페리가 살았던 곳을 찾아보니
콜럼버스 서클 근처의 고풍스러운 아파트던데, 과연 좋은 위치에서 살았다 싶은... 아유-^^;)

6월에서 8월에 걸쳐 열리는 링컨 센터 야외 음악회 시리즈도 완전히 끝난 듯,
광장마다 빽빽히 놓여져 있던 의자들이 치워진 빈 공간이 괜스리 휑하게 느껴지더군요.
내년에는 룸메이트를 구해서라도 링컨 센터 근처에서 살고 싶기도 하고... 음.
(야외 행사들은 동네 한 바퀴 돌듯 나가서 즐기기엔 아주 좋은데, 일부러 기다려서 보기엔 좀 애로사항이...
그런데 링컨 센터 근처는 지리적 이점 빼면 또 매연과 소음이 지독한 번잡한 도시 한가운데...;; 우웅;;;)

링컨 센터 앞의 반즈앤노블 꼭대기층 스타벅스에 앉아서 무심히 바라본 창 밖.
맞은편 타워레코드 빌딩 위의 수많은 주거공간, 대부분 커튼을 드리우고 있는 가운데
유독 전신을 창에 기대고서 길가의 사람들과 차의 행렬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여자가 있었어요.
(왠지 공각기동대가 연상되는 모습이었음.) 그러고 보니 저 창문 통유리 큰 거였구나 ^^;
음- 이쪽 길가 건물이면 월세 2500 아니던가? (더럽게 비쌈;) 생각하며 다시 주변 건물들을 관찰.

창 밖으로 보이는 고층 맨션들. 집들이 많기도 하지요-
빼곡히 차곡차곡 포개져 있지만 서로 모르고 사는, 섬처럼 외딴 작은 공간들.
누가누가 살까요? 줄리어드 앞이니 음대생들도 학교 앞에 있을 것 같고... 브로드웨이 번화가니까...
뭐 여러 직업의, 여러 나라의, 비싼 집세를 감당할 만한 사람들이 형편 맞춰 살겠지요.
얼마나 많은 삶들이, 얼마나 다채로운 배경과 사연을 안고 지금 여기에 모여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해 보면 저 속에 담겨있는 소설들이 몇 편이야; 싶은 생각이 새삼스레 들곤 해요.

맨하탄의 야경은 화려하죠. 잠들지 않는 도시가 내려다 보이는 고층에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지 않아?
(아예 확 높아서 전망이 트이고, 공기정화시설과 방음유리창, 에어컨디셔너 완비가 전제 조건... ^^;;;)
조용히 야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왠지 내가 혼자라는 것도 절절히 자각하게 되어요.
뉴욕은 연애하기에도 좋은 도시라는데, 어째 이리 남의 일로만 느껴지나; (남자는 걸리적거린다는 생각만 듬;)
헐리우드 영화의 모든 슈퍼히어로는 뉴욕에 모여 있는 것 같으니 히어로 헌팅이라도...? 쓰으읍 -_-;

재정 조건 고려하지 않고 고를 수 있으면 어디서 살고 싶은가- 때때로 생각해 보다가 끄적끄적.


<덧붙이는 말>
저는, 추천 블로그 뭐 이런 데에 뜨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 오히려 난감.
(왜 종종 올라가는 건지 알 수 없음 ㅠ ㅠ 그냥 랜덤 같기도 하고... 누가 무슨 기준으로 추천?;;)
조용히 외딴 섬으로 있게 해주세요, 티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