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마주침.

지난 목요일, 맨하탄 코리안타운에서 길을 걷다... 대학 동기인 친구를 만났다. 같은 길을 반대 방향으로 걸으며 지나치는 순간 서로 무심히 눈이 마주쳤고, 똑같이 눈이 동그래져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의 첫 마디는 "야! 너 *** 아니야?! 너 여기서 뭐해??? *o*" 였고,
나는 그런 그녀가 여전히 그 애 답다고 생각하며 "***이잖아~? 안녕? ^-^" 하고 웃었다.
(뭔가 웃겨서 깨르륵거리지 않고는 못 배기겠더라; 이렇게 만날 줄 몰랐어. 야아~ 사는 거 재밌어.)

IMF 속에서 내가 취직할 때 그녀는 동 교육대학원으로 진학했다가
캐나다 어학연수를 거쳐 NYU 대학원에서 Music Therapy 전공을 밟았다.
그녀가 뉴욕에서 처음으로 보낸 동보 메일(대략 희망찬 바른생활;;)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겼었는데...
대학원 졸업 후 지금은 뉴욕의 병원에서(센트럴 파크 바로 옆이라는데 어디려나;) 일하고 있다고 한다.
나랑 마주치기 바로 전날 프로포즈 받았다며 손에 낀 다이아 약혼 반지도 기쁜 듯이 보여주었다.
(한국말 잘 못하는 교포 청년이라는데, 얘기 들어보니 ALEXANDRITE에서 레바인이 암브로시아에게 해주었던 것 같은 이벤트를 좀 더 성대하게, 프로포즈용으로 벌인 듯한 느낌이었다. 우후훗~ 아유 로맨틱~ *^-^*)
대학 시절의 그녀는 자기 내면의 갈등과 상처 등을 활발한 종교활동으로 치유하려는 듯한 데가 있었는데,
음악 치료라는 전공 자체가... 남을 치료하기 전에 우선 본인 자신부터 치료시킨달까,
나이브하던 면이 꽤 좋아져 있었다. 그리고... 뭐랄까... 좀 더 단단하게 벼려진 느낌?
낯선 데서 이것저것 극복해 내고(본인 말마따나 힘들었으리라) 사회적 터전을 잡아 안정되어서 그런지,
예전과 변함없는 듯 너무나 낯익으면서도 전보다 훨씬 안정되어 있고, 부드럽게 꽃피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얘기를 나누면서 왠지 꽤 기뻐졌다. 그래그래, 행복해야지. 힘내서 사는데 좋은 나날 보내야지 ^^

20대의 한 시기를 공유하고 있었던 만큼, 그녀가 물어온 그 때 그 시절의 **, 지금은 어떻게 되었나? 에는 마냥 웃을 수 없었지만 ^^; 그녀가 기억하는 그 시절의 나는 왠지 내가 그랬나? 나한테 그런 때가 있었던가? 싶을 만큼 좋게 기억되고 있어서 괜히 약간 슬퍼졌다. 옆의 동행에게 "얘가 진짜 순정파였거든", "되게 날씬했거든 피부도 완전 애기같고", "애가 너무 순진해서 세상 공부 좀 시켜야겠다고 생각했었지" 뭐 그런 얘기를 내가 부인할 새도 없이 줄줄줄 에피소드와 엮어 수다를 떠는데(하긴 대학 때 미팅 나가면 얘가 쓸데없는 것까지 내 소개 다 했지;; 정작 본인은 새침하게 앉아있는데 산통 깨는! -_-; 날 그렇게 소개하지 말아줘;;), 때로는 가슴이 따끔따끔해지는 기억도 끌어냈다. 어차피 다 과거지사지만. 과거를 후회하지 않는 방법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일까나...

서로 '어쩜 몇 년만에 만났다는 느낌이 하나도 안 들까 이상도 하지-' 하고 까르르~했는데,
같은 과였던 동기들이 어찌 지내나 얘기하다 보면 시간이란 게 참 무섭구나 싶다...
(소년마법사 말마따나, 나도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할 텐데... ^^;)
나는 소극적이고 의지박약인 자신에게 진절머리를 내고 있었는데,
그녀는 "너는 여.전.히 액티브하게 열심히 사는구나- ^^" 라며 활짝 미소짓는 게 아닌가.
순간적으로 어? 하고 멍해져서 내가 언제 그렇게 살았어? 라고 바보같이 되물었더니, 왜~ 너 그 때 이것도 하고 저것도 했었잖아- 해서 덩달아 기억을 떠올리며(대개 바보같은 일이었던 것 같은;;) 쓰게 웃었다.
사회적, 경제적인 부분을 쌓아올리는 게 아니라 엉뚱한 데서 로망을 찾는 게 천성인가 싶기도 하고...;;
그녀가 전해준 정보들은, 내가 지금 여기서 찾으려는 게 대체 어떤 길인가-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아유- 또 혼란스러워- ^^; 우우웅...)

인간이란 시간을 들여 강해지는 존재일까요.
그야 당연히 시간을 어떻게 썼냐에 달렸을 테지.
아군도 적도 돼. 그 녀석들(카르노와 레비)은 자신의 힘으로 시간을 아군으로 삼은 거야.
... 나도...
그나저나, 너희들이란 생물은 어째서 그토록 많이 상처받을까?
어째서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정말 쉽사리 상처입어.
내 나름대로 생각해 봤는데... 그건... 아마도 이유가 있는 거야.
의미도 없이 그렇게 만들어진 건 아니라고 생각해.
아마도, 그 아픔은 이를 위해 있었구나- 그렇게 생각되는 순간은... 내게도 있으니까.
-...나도 시간을 내 편으로 삼겠어.


뭐, 경험이 쌓이면서 성격은 다소 꼬이게 되지만서도... 폼나게 꼬이면, 상처 자국도 폼나지.
-와신상담[臥薪嘗膽] 11년의 남자, 레비 디브란 님을 보라~ ^^-

- 나루시마 유리 작, 소년마법사 8권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