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보고.

음-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어요. 계속 더워서 글 올릴 마음이 안 났는데,
이번 주에는 더위 먹었다가 결국 에어컨 달고(극락~),
그 다음엔 도서관 갔다 냉방병 들어서 바로 몸살기운 안고 돌아와 이틀간 뻗었었고...
뭐부터 얘기할까... 역시 벌레 퇴치부터?

6월 중순쯤, 모기 물린 것처럼 가렵고 부어올라서(그것도 한번 물렸다 하면 열군데 이상이고
마치 산모기한테 뜯긴 것 같은 강렬한 가려움.) 이상하네- 모기 못 봤는데- 갸웃하고 넘어감.
6월 말쯤, 저녁 준비하다 간지러워서 보니 또 물렸음. (보름 전에 물린 것도 아직 땡땡하고 가려움;)
우웅- 아무래도 이상해- 집안에 뭔가가 있는 것 같아- 기분 나빠- 가려운데 뭐 바르지- 고민.
(버물리 같은 거 하나도 안 가져왔음; 바세린 바른다는 애도 있는데, 그게 효과 있나?)

며칠 후(7월 초) 우연히 마주친 다른 한국인 세입자들이 BEDBUGS 때문에 나가려 한다는 얘길 듣고,
- 침대벌레? (갸웃) 그게 뭐지요?
- (쓴웃음) 빈대요.
- 허걱! 자세한 얘기 좀 해 주시겠어요?
- 물론이예요. 여기 좀 보세요, 이게 다 물린 자국이예요(온 몸에 수백군데;;; 심지어 귀 뒤까지! ㅠ_ㅠ)
- 히익;;; 저도 이렇게 연달아 뜯긴 자국이 있는데; (허벅지를 걷어보이며)
처음엔 모기인가? 했다가 뭔가 좀 이상하다 하던 참이었어요;;
- 하아, 저희는 지금 몇달째 고생했고 할만큼 다 해봤어요. 이 아파트에 이미 다 퍼진 거예요.
(그녀들의 집과 우리 집은 대각선으로 끝과 끝, 정반대의 1층과 꼭대기 층.)

그 뒤에 다른 집 하나 더 모여서 빈대의 폐해와 사태의 심각성, 없애기 힘들다는 사례들과 대처방법 등을 논의함.
(참고 사례들과 심각하게 피해 입은 예시 사진들이 너무나 끔찍해서... 굳이 여기 다시 옮기고 싶지는 않음.
현실적으로 문제를 겪는 사람에게라면 모를까, 그게 아닌 경우라면 그저 불구경 같은 흥미거리일 테고.)
(국내 번역 출간된 "시간여행자의 아내"에 보니까 '빈대'를 '침대벌레'라고 직역해 놨더라...;;;
에잉, 위험한 어감이 하늘과 땅 차이오.)
아무튼, 한국에선 속담 말고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벌레라
이 무슨;; 싶은 당혹감과 이걸 우째야 하나- 하는 아찔한 막막함이;;
(전혀 겪고 싶지도 않고, 가능하면 안 겪어도 될 것 같은 경험인데 말이지.)
개인이 방역하는 건 잠깐일 뿐이라 소용 없고 면역력만 길러준다며, 건물 차원에서 전문가가 방역을 해야 한다는데, 이 아파트에 61가구가 살아서(이렇게 많이 사는 줄 몰랐어;) 온 가구가 동시에 방역하는 게 현실적으로 무리인 데다, 집주인은 우리 책임 아니다, 우리는 오직 쥐랑 바퀴벌레 나오는 것만 책임진다(이보셔 나 바퀴도 봤어. 한 번 볼 때마다 정신적 데미지가 크다오.) 하지만 세입자가 불편하게 사는 걸 원하지 않으니 방역 불러주겠지만 지금 독립기념일이 끼어서 언제가 될지 모르니 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달라고 함.

다른 집에서 실물의 BEDBUG 샘플을 보고 온 다음 날, 우리 집 책상에서 쌀알만한 벌레가 기어가는 걸 잡았음.
기분 나빠~ 왜 이딴 게 우리 집에 있는 거야~ 하지만 이게 지금 현실이지? 현실을 회피해선 안 돼 ㅠ_ㅠ 방심하고 내버려뒀다 딴 집처럼 알이라도 까면 어쩔 거야 지금 움직여 넌 딴집보다 늦게 겪고 일찍 뭐가 뭔지 깨달았으니 운이 좋은 거라구- 중얼중얼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싶은 자신을 독려하며, 일단 혼자서 Fogger형 강력살충제를 사다가 설명서 읽어 지시사항대로 해놓고 아침에 외출할 때 터뜨렸음.
(웬만한 것 위에는 신문지 덮어놓고 화재경보기는 꺼놓고 실내에 찬장 같은 건 다 열어놓고)
Raid에서 나온 3개들이였는데, 한번에 싹 잡아야 한다고 해서 여기저기 세 개 다 터뜨려 놓고 나갔음. (제대로 연기가 나오나 지켜보다 나갔더니 그 새 폐 안에 무슨 세제라도 낀 것 같은 비누냄새와 기침, 구토감, 눈물이...)
내가 모르는 무슨 큰 벌레라도 죽어있음 어떻게 치우지 ㅠ_ㅠ 하고 오후에 조심조심 들어와 봤더니
다행히 일견 깨끗해 보이는 실내에 안심하며 환기시켜 놓고 저녁의 발레 공연에 다녀와서...
아아- 오늘의 줄리엣 너무 아름다웠어- 랄라라- 일단 방역을 했으니 청소를 해야지, 핸디진공청소기로 방 안을 싹싹 흝고 신문지 깔고 털어봤더니 벌레같이 생긴 작은 것들이 있어서 눈에 불을 켜고 골라내고, 두어번 더 청소기로 방안을 헤집음.
(시각은 새벽 1시. 땀은 물 흐르듯 뚝뚝 떨어지고, 아직 샤워도 못했음.
지난번엔 또 귀뚜라미 비슷하게 생긴 징그러운 게 집안에 들어왔길래 이참에 히터 쪽 구멍을 신문지로 봉해버림.
미안해 뉴욕타임즈, 이런 데다 써서...;;; 그래도 예쁜 페이지로 골라줬어.)

Loathing~ unadulterated loathing~을 노래부르며(뮤지컬 위키드;), 골라낸 벌레들의 시체를 투명통에 담아 봉인해 놓으며 '이 무슨 시련인가- 내가 집세 좀 싼 데 얻어보려고 노력했다고 해서 정녕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하는 거야? ㅠ_ㅠ' 아흑. 난 어려서부터 벌레 기어가는 소리 때문에 잠이 깬 적도 있을 정도란 말이다~ 에잇에잇.
빈대로 추정되는 검은 쌀알만한 벌레 7구뿐만 아니라 진드기로 추정되는 벌레의 시신도 몇 구 걸려나옴.
-인터넷에서 빈대 실물 사진 검색할 때 같이 걸려나와서 본의 아니게 봐뒀던, 역시 새로운 벌레-
심지어 이쪽은 완전히 죽지도 않고 조금씩 꿈틀거려서 더욱 기분잡치게 만드는.. ^^;
(다음날 다른 애한테 "빈대 다음엔 진드기까지 나왔어! 뭐가 이래? 못 살겠어~" 하고 버럭거렸더니
빤히 나를 보며 "언니, 진드기는 어느 집에나 원래 있어요. 한국에서 못 봤어요?"라는 말을...
정말? 난 지금까지 본 적도 없었고, 앞으로도 같이 살고 싶지 않단 말이야! 공연 잘 보고 들어와서 청소기 털며 보고 싶지도 않은 벌레를 시선 집중해서 골라내야 하는 내 심정을 알기나 해?)

못참겠다 꾀꼬리... 가 아니고, 집주인은 내가 이 고생을 하는 와중에 샌프란시스코니 어디 섬이니 여름 휴가를 만끽하고 있었을 테니, 이제 이 몸이 정식으로 항의할 때가 되었어, 라고 결심. 다음날 점심 시간에 도시락을 밀어두고 항의 편지부터 썼음.
(지난번에 집 주인 만난 건 다른 세입자들이 밤 11시에 초인종 울려 찾아갈 때였는데, 나는 밤 9시 이후에 남의 집에 가는 게 예의가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부득부득 괜찮다고 하더라;;;
아니나다를까, 반바지 차림으로 졸린 듯 나오던데 미안하고 민망하기 이를 데 없어서 구석에 찌그러져 있었음;;)


Yesterday, I exterminated my room myself and the result was awful.
I found some bedbugs, ticks and roaches in my room!
When I searched for a new room, my requirements were no bugs & clean, safe, and quite place.
I'm terrified of bugs!
Before the contract, I specified that to my real estate agent and she showed me the apartment.
I believed this apartment to be guaranteed bug-free and I made my contract with that in mind.
I have never imagined this situation and I'm absolutely shocked by the infestation.
I haven't had any bugs in NYC until I moved in here.
My furniture, bedding, and comforter... everything is new. So I don't want any bugs on it.
I tried to find a good house through my real estate agents.
I always clean surroundings and exterminated the place immediately.
But, now I found many harmful bugs in my house and I'm worried about the gravity of the situation.
If it gets worse, I refuse to live in such an infested room.
I, currently suffer from insomnia, oversensitiveness, and bug-bite alergies.
You said to me, "Just be patient." ; However, this is my only place to stay in N.Y,
and the number of bugs is absolutely unacceptable.
I'm very protective of every small thing in my home.
This is such a terrible situation to me.
I think that you should take some action regarding this situation. You must take responsibility.
If the bugs problem isn't fixed, I would like to refund my deposit and I'll move out.
I don't want to ruin my new furniture.
And I don't want to go to the hospital because of this infestation. I already did my best.
I would like your help. This situation is so different from my premise of our contract.


(난 항의를 세련되게 하는 법 모름. 누구 아는 사람 있으면 그런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영어 좀 가르쳐 주세욥.)
편지를 다 쓴 후, 전화를 걸어서 I would like to make an appointment to talk with you~
What time do you prefer to meet with me? 했더니 저녁에 퇴근하면서 우리 집에 들르겠단다.
(집주인은 블루밍데일 백화점 매니지먼트부인가 하는 데 있었다는 중후한 미국인 신사. 왠지 영화에서 본 듯한 낯익은 용모에 천천히 나직히 말해주는 목소리가 결정적으로, 인상이 상당히 좋았더랬음. 집 계약할 때 마침 부인-중국인-이 안무 맡았던 공연이 라디오 시티 뮤직홀에서 열렸다는 신문 기사도 보여줬음.)

저녁에 우리 집에 방문해서 벌레 시신과 내가 어떻게 해놓고 사는지 눈으로 확인하고는, 오- 난 네가 아주 좋은 세입자라고 생각해. 네가 깨끗한 걸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솔직히 말해서 상당히 깔끔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함. ^^; 세간살이도 간소하고. 집세와 각종 고지서도 통지 받자마자 꼬박꼬박 내고. 침대 시트는 일주일마다 빨고, 샤워는 매일 두번씩 해. 내가 다니는 데는 공연장이나 도서관이고, 잔디밭이나 맨땅에는 앉지도 않아. 나한테 빈대 책임 물으면 모가지를 졸라버릴 테야.) 근데 벌레는 우리 책임 아냐- 로 뭐 이것저것 주절주절 읊는데(모국어인 만큼 세련된 화법으로 자기 주장을. 하지만 나에게도 활화산 같은 분노가 차곡차곡 쌓여있으므로 오- 당신 입장도 이해하지만, 이건 아니라고 되받지 않을 수 없었음.) 결국 네가 계약을 깨겠다면 보증금은 돌려줄 수 없어, 이건 내 잘못이 아니고, 우리 건물은 지금까지 빈대가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었거든. (그럼 이 많은 벌레가 어디서 나타난 건데? 빈대 한 마리는 싱크대 밑에서 건졌거든?)
하지만 네가 원한다면 방역은 해줄게. 그게 내 최선이야. 해서 으응- 알았어. 했더니 내가 내일 방역업자랑 스케줄 잡아보고 언제 올지 너한테 알려줄게. 라고 해서 끄덕끄덕. 알았어 고마워.
그런데 이 벌레들 내가 가져가도 되니? / 음- 나도 증거가 필요한데. (혹시 수틀리면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싸워야 하므로;) 했더니 알았어 네가 갖고 있으렴 하고 그냥 갔음.
그래서 다음날 통화해서, 일요일날 오전에 방역전문업자가 오기로 함. (다른 세입자들한텐 나보고 좀 연락해 달라고 함. 미운 털이 박힌 건지, 단지 귀찮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에 다른 세입자들한테는 방역업자 부르면($300-400) 너희가 돈 내야 한다는 식으로 말했다는데, 나한테는 그런 얘기 입도 벙긋 안했음;;; 착하다.)

일요일에 Exterminator가 왔다 간 후(2주 후에 또 온다고 함), 영화 보러 나갔다 와서 침대 시트와 이불을 들고 세탁하러 감. (이불도 햇빛 아래 육안으로 검사했다 전등 불빛에 비춰봤다 하면서 벌레가 혹시 없는지 확인,
깨끗하긴 했는데 내 눈만으로 안전하다 믿을 수 없어서 뜨거운 건조기에 돌리기로 했음. -물어봤더니 오리털 이불은 한 번 빨면 말리는 데만 세네시간 걸린다고 하길래 물은 안 묻히고 건조기에만 돌렸음-
그런데 확실하게 하겠다고 뜨거운 온도로 맞춰놓고 2,3분 눈을 뗐더니 구수한 냄새가... ㅠ_ㅠ
우아앙 난 이불 구워먹을 생각은 없었는데... 순백의 새하얗던 이불이 부분적으로 살짝 노르스름해지려는 판국.
아 나 우울해염~ 벌레 따위 너무 싫어! ㅠ_ㅠ
자고로 집은 가장 편안해야 하는 장소이고 침대는 그 궁극의 장소가 아니던가?
아니, 그것을 상식으로 믿고 살아올 수 있었던 그 동안의 편안함에 감사드려야 할 것 같다.
감사합니다, 제가 누릴 수 있었던 것들과 누리고 있는 것들에... 응, 우울해하지 말자.
지금은 일단 괜찮은 것 같은데... 안심한 건 아니고, 한 달 정도는 신경이 계속 경계경보발령상태일 듯 함.

* 내가 룸메이트로 삼을까 했던 다른 아가씨의 경우엔, 이사간 집에서 쥐가 책상 위의 껌에 붙어있었다고...
(혹시 빈대야? /-아니, 더 큰 거예요... / ...바퀴야? / -아니, 훨씬훨씬 더 큰 거예요... /
... 설마, 쥐야? / 맞아요 ㅠㅁㅠ 어헝헝...) 아 뭐 이런 ㅠ_ㅠ 선진국 맞아? *

집주인이 우리집에 왔을 때, 그런데 너 에어컨 없니? 더워서 여름에 지내기 힘들 텐데- 하길래,
음- 전기세가 비싸서 말야... 하고 애매하게 웃고 말았었는데
(연일 섭씨 33도-36도의 더위여서 냉수 샤워만으로 버티기 좀 힘들어지긴 했음),
사실은 전기세보다도 무거운 거(최소 30KG 이상) 사다가 혼자 달고 뗄 엄두가 안 나서였음;
(입주할 때 시큐리티 가드라고 쇠창살도 창문에 달아주어서 혼자서 에어컨 달기 정말 무리였음;)
어떤 애는 에어컨 청소하려고 했더니 안에서 지네가 나왔다고 하고; (괴담도 아니고 너무 싫어 ㅠ_ㅠ)
그런데 그 다음엔 관리인이 와서 모기장 없는 창문 하나에 마저 달아준다고 하면서
너 에어컨 필요하지 않니? 다음 달엔 지금보다 더 더워서 진짜 에어컨 없이 지내기 힘들 텐데- 하길래
으응, 나도 필요하다고는 생각하는데, 혼자서 달 엄두가 안 나서 그냥 있어... 했더니
오, 그렇다면 에어컨만 사오렴, 우리가 다는 거 도와줄게. 우리 집도 걔(모기장 달아주러 온 기술자)가 도와줬거든 ^^ 하길래 응! 내일 당장 사올게 *_* 고마워어엇 하고 덥석.
(그 날은 섭씨 35도가 넘는 더위여서 냉수 샤워도 통하지 않는 뜨거운 불면의 밤이었음;; 난 선풍기도 없음.)
다음날 바로 사다가 택시기사가 방안까지 날라다 옮겨주었고, 힘좋은 기술자가 척척 달아주어서 편하게 끝났음.
(이 눔이 또 "누가 돈 내니?"부터 묻는데 관리인이 냉큼 "얘 우리가 돌봐주어야 하니까 나한테 청구하시오" 해서
나는 돈 문제로 입도 벙긋 안하고 눈만 깜박이다 나중에 영수증에 사인만 했음;; 아유 착해;;
전기톱으로 창살 잘라내고 샷시 창틀에 나사 박는 거 보니까 이건 내가 아무리 근력 트레이닝 해도 무리겠더만;;;
에어컨부터도 혼자 들지도 못하는데 무슨;; 차라리 돈을 더 버는 쪽으로 노력하는 게 훨씬 건설적일 것 같음;)
제일 작은 에어컨이 5,000 BTU에 100불 정도인데 아무리 틀어도 시원하지 않다는 얘길 많이 들어서,
나는 좀 더 투자해서 8,000 BTU Window Air Conditioner로 샀음.
(LG 게 제일 싸기도 했고, 나름대로 국산 사랑 중. Warranty 기간도 2년.)
매장에서 시험삼아 틀어봐 달라고 해서 몇 가지 비교한 후에 샀으므로 후회 없고, 편하게 달아서 잘 작동 중 ^^;
온도설정할 때 파렌화이트(화씨)로 나오니 섭씨로 변환계산해서 맞춰야 함. F=x1.8℃+32.

다음엔 영화 본 거 감상이랑 이것저것 조금 더 즐거운 얘기~ ^^
(오늘의 얘기엔 낭만이 없쟈? ㅠ_ㅠ 대신 리얼리티가 있는 서바이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