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들의 기억. (예전 사진 모음에 코멘트 추가)

밤새 비가 내린 후의 새파란 하늘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던 2003년 6월의 어느 아침.

사진기를 들고 집앞을 어정거리다가 눈에 보이는 걸 닥치는 대로 찍었습니다.

같은 곳인데 조금만 비껴 찍어도 살짝 다른 느낌.

우리 꼬맹이. (내멋대로 꼬맹 잔다르크 1세. ^^; 별호로 충성스러운 꼬맹, 간이 배 밖에 나온 꼬맹 등등...)
현재 우리 집에서 나고 자란 아이 중 최연장자! 장로급 존재랄까, 좌우명은 천상천하 유아독존;
(무시무시한 센스의 꽃배경은 살떨려도 무시합시다... 시래기가 널부러진 배경보다는 낫겠거니;;)

이야기의 시작은 1995년 어느 봄날. 나무 사러 장에 나갔다 오신 부모님이 갑자기 데려오신 잡종 두 마리.
(보신탕거리로 개를 내놓기도 하는 황폐한 시장 바닥에서, 조그마한 몸뚱이를 서로 의지하고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모습이 너무 가여우셨답니다.) 개를 키우면 포메라니안이 좋겠다고 내심 생각하던 제가 종이 상자를 열어보니, 차멀미로 인한 토사물과 함께 두려운 눈으로 올려다보는 초라한 아이들이 있었죠. OTL;;;
열심히 씻기고, 오돌오돌 떨길래 드라이어로 말려주는데, 제 옷에 쉬야를 하고 구석으로 도망가 움츠리더군요;

전에 있었던 곳에서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사람을 무척 두려워했어요.
인기척만 나도 화들짝 깨어 바들바들, 음식을 줘도 눈치만 보고... 시야에 사람이 없어져야 허겁지겁 해치우고.
그래서 살며시 돌보며 그냥 지켜보았죠. 해치지 않아. 하지만 무섭다면 가까이 가지 않을게 겁내지 마- 하고.
그랬더니 서서히 나아지더군요...
그리고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고 신뢰를 보내올 때, 뭉클하고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이름을 뭘로 지을까 음음음... 하고 있었더니, 부모님이 대뜸 복돌이, 복실이라 지으셨습니다. 오~ 컨츄리~;;;
우직한 남아는 씩씩하고 충성스럽게, 날카롭던 여아는 새침떼기와 애교만발을 섞어놓은 듯한 성격으로 자랐죠.
성견이 되더니 대뜸 자식 농사(...)를 짓더군요. 갓 태어난 강아지는 촘촘한 융단에 기름을 발라놓은 듯한 느낌.
복실이는 날카롭게 째지던 성정이 크면서 누그러지더니, 새끼를 낳고 나서는 더욱 온화해졌답니다.

변해가는 게 신기해서,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나는 변한 게 없는데, 우리 복실이는 어느 새 결혼도 하고 애기도 낳았구나... 시간 가는 게 참 빠른가 보다...' 말을 건네며 눈을 지그시 맞추었지요. (핥아오는 걸로 대답을 대신하더군요;) 인간과 동물의 시간의 흐름이 서로 다르다는 걸 실감하니 조금 슬프기도 하더군요. (평생 곁에 있어줬으면 좋겠는데...)

뭐 그러다 동네 사람에게서 아장거리는 강아지를 하나 더 데려왔는데, 크자마자 복돌이가 냉큼 잡아먹더라는...
-_-; (이래저래 숫캐라는 존재를 좀 징그럽다 느낌;) 아무튼, 그리하여 태어난 첫 아이 중 하나가 바로~
경사스럽도다 복되도다 우리 꼬맹님!!!

꼬맹의 족보. 1996년 강남 출생. 복실이의 형제인 1대 복돌이와, 눈망울이 아름다운 하얀 발의 깜둥이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 이 아이는 태어나서부터 가장 작고 깜찍한 자태로 온 가족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습니다. (이름부터가 이를 증명하죠~;) 아빠를 닮은 버선코와 엄마를 닮은 조그맣고 까만 몸뚱이의 소유주로 자라났습니다...만; 다 커도 여전히 작더라구요; 그래도 팔팔! (워낙 작아서 짝짓기를 못했...; 슬하에 자식 없음이 한 점의 아쉬움.)

새끼를 낳고 나서 온화하신 복실님으로 업그레이드된 우리 복실이, 남의 새끼도 퍽이나 예쁜가 봅니다.
매일매일 지그시 바라보고, 어미가 집을 비우는 틈을 타 슬쩍 들어가 품어주기도 하더군요.
어느 날 비가 많이 내리길래 나가봤더니, 케이지형 개집의 사이로 비가 잔뜩 들어오고 있었는데,
정작 어미는 없고 복실이가 자기 몸으로 비를 막고 새끼들을 품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기특하던지~
그때부터 갸륵한 복실, 이라는 이름이 추가.

그렇게 개들이 점점 불어나서... 급기야 아버지가 동네 뒷동산으로 산책이라도 나갈라치면,
12마리가 줄줄이 그 뒤를 따라서 거리를 길다랗게 누비는 현상이...
(2층 창문으로 내다보니, 장관이었습니다 ^^; 배를 쥐고 웃었지요;)
아무래도 좀 너무 많아져서 마구마구 다른 데로 보내기 시작했지만, 가족같은 아이들은 굳건히 집을 지켰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흘러 1999년 10월.
가장 사랑하던 1대 복실이. 전날 낮까지도 맑은 눈망울을 바라보며 쓰다듬어 줬던 기억이 생생한데,
하룻밤 새에 하혈을 엄청나게 쏟으며 비명횡사해 버렸습니다.
(당시 개인적으로 너무 힘들던 때라, 나 대신 살을 맞고 죽어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죽는다는 걸 상상조차 하기 싫었던 아이는 처참하게 떠나고,
남겨진 건 생후 열흘이나 될까말까한, 눈도 못 뜬 새끼 네마리.
그래도 어미라고... 죽을 때까지도 젖을 빨리고 있더군요. (아직도 그 광경이 눈물과 함께 떠오릅니다...)

아무튼, 살아있는 목숨은 돌봐야지요. 길에서도 울고, 버스에서도 줄줄 흘러내리는 걸 닦아가며 동물병원으로.
몇 가지 물어보고, 강아지용 분유랑 젖병이랑 사료랑 사들고 돌아오면서 꼬맹이를 냉큼 잡아다 앉혔습니다.
꼬맹아, 어떡해... 복실이가 죽었어... 알아? 아냐구... 이제 우리가 얘네를 돌봐야 해... 좀 도와줘... 했더니 그저 눈만 말똥말똥거리며 핥더군요; 둥지를 만들어 새끼들를 푸짐하게 안겨줬더니, 새끼들은 아늑한 온기와 젖을 찾아 옳다꾸나 파고들고, 처녀 꼬맹이는 질겁을 하고 도망치려 했습니다. 내심 미안했지만; 나에겐 유교수 같은 수의사의 스킬 따윈 없다구! 네가 나를 도와줘야 해!!! (갓난쟁이들을 돌보는 데 대한 지식은 닥터 스쿠르를 본 기억뿐이었...;;) 복실이가 너를 어떻게 돌봤는데~! 잔소리를 하고 야단쳐가며 다시 억지로 눌러앉혔습니다;;
물론 젖이 나올 턱이 있나요. 그저 시뻘겋게 생살을 빨리고, 뱃가죽까지 온통 부르트기만 했지요...;;
(꼬맹이의 대수난시대; 그녀의 견생에 이런 위기는 다시 없었도다;)

그래도 한 번 돌보기 시작하니 배설물 다 받아먹고 핥아주고 품어주는 게 얼마나 기특하던지.
분유는 제가 울다 깨다 하면서 4시간 간격으로 타 먹였지만...(나중에 금족령이 내려진 저 대신, 사료와 분유를 사들고 위문와줬던 샐리양의 상냥함도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이런저런 주위의 도움의 손길이 헛되지 않아... 수의사한테까지 포기하라는 얘길 들었던 생후 열흘짜리 강아지 네 마리는, 모두 무사히 건강한 성견으로 자랐습니다. 그 후사들이 지금도 어디선가 뛰어놀고 있지요.
(참고로, 모양이 기억하고 있는 '내 손 안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던 아이'는 이 갓난쟁이들이 아니랍니다.
그 전에 복실이가 낳은 아이들 중 하나였는데, 가장 작고 약하더니 결국 그리되더이다...;
어떻게든 건강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환타지의 치유의 손이 아니라... 그저 마지막까지 곁을 지켜주는 것밖에...
계속 새끼를 찾아 불안정하게 맴돌더니, 기어이 죽은 아이의 냄새를 맡으려는 어미의 모습도 슬펐어요...)
생명을 키우고 돌본다는 건 즐겁고 기쁜 일만 있는 건 아닌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