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한 얘기.

얼마 전인지, 조금 오래된 일인지 잘 모르겠다. (시간이 워낙 훌쩍 흘러가서...)
비가 연달아 잔뜩 오는 날이었는데,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아주 천천히 조용히, 차가 오나 안 오나도 꼭 확인하고 멈춰서 걸어다녔다. 그러다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데... 돌연 뒤에서 뭔가가 밀었다. (가방을 메고 있어서 둔한 느낌이기도 했고, 휘청은 했어도 넘어지지는 않았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는데, 갑자기 옆에 서 있던 아가씨가 내 팔을 탁 잡으면서, "괜찮아요? 괜찮아?" 확인을 한다. 억지로 정신을 차려 보니 택배 차가 후진하면서 슬쩍(이어서 정말 다행이다;) 밀었던 모양. 왜! 횡단보도에 사람들 잔뜩 있었는데 나일까? 나 정말 조심해서 다니고 있었는데 ^^; 싶어져 쓴웃음. 그 자리에서 무슨 일이 생겼어도 내가 직접 연락하지 않는 한 얼른 알아줄 사람도 없다는 데에 외로워졌고, 사람이 아둥바둥해봤자 인력이란 게 참 하잘것없고 한 치 앞도 모르는구나. 사는 게 뭔지...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더 우울해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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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상처를 겉으로 드러내고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은 오히려 상태가 괜찮은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릴수록 대놓고 괴롭다 외치는 경향이 강한 것 같기도 하다) 전에 어떤 여자애 왈, 자기는 첫사랑한테 너무 상처를 많이 받아서 애인을 사귈 수 없게 됐단다. 그럼 하루에도 몇번씩 연락오는 남자애들은 다 뭐야? - 발렌타인인지 화이트인지도 아무튼 챙겨받고 있더라 - 물어봤더니 "어머, 그건 다 그냥 친구죠... 제가 힘들어했던 걸 아니까 챙겨주는 것뿐이예요. 전 애인이 없어서 외로워요" 라는 대답을 슬픈 표정으로 하며, 자기가 얼마나 상처받았었는지를 구슬프게 얘기해 주었는데, 왠지 아 그래 하고 더 이상 상관하기 싫어졌었다; 가벼운 상처이기 때문에 아무한테나 떠벌떠벌하고, 그걸 오히려 무기로 삼고 있구나 싶기까지 해서 조금 불쾌. (하지만 그 사람이 진짜 얼마나 아프고 힘든지 역시 나로선 알 수 없으니 거기서 끝.)

더 예전에, 그다지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여자애가 채팅으로 말 걸더니 막 자기 얘기 하며 힘들다고 울고불고했는데...; (전화통화 한 번 안해봤던 사이건만 전화로까지 하소연 들어줬음 -_-; 상대방은 후련해진 모양이었지만 나는 귀 아프고 시간 날리고 탈진; 객관적으로 보자면 사소한 일로 여겨졌기에 더 그랬던 듯;) 인지상정으로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과는 또 별개로, 아무라도 상관없었던 것 같은데... (그냥 누군가 붙들고 괴로움을 표현할 상대를 원했던 듯) "내가 아니어도 되는 거면 나한테 와서 울지 말았으면 좋겠는걸" 하는 생각이 들면서 피곤해졌다. (당시엔 남은 슬퍼하는데 애고 나쁜 생각이지; 하고 털어버렸는데,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저랬다. -_-;)

사실, 저렇게 겉으로 확 내뿜어 털어버리는 게 건강에 도움이 되니 좋은 것이고, 정말 문제가 되는 건 남에게 말 못할 괴로움을 안고 있는 사람들일 텐데... 그런 고민들은 절대 쉽게 겉으로 탁 털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때로는 그렇게 은밀하게 고여있는 고통의 앙금도 스며나오는 법이지.) 그런 이들의 고민이라면 기꺼이 나누고 싶지만, 그다지 잘 안다고 할 수도 없는 사람의 떠벌떠벌하는 고민해소역은 사양하고 싶다. (서로의 고민을 나눔으로써 친해지는 방식도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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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고 상냥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아마 그네들이 평소에 나에게 따뜻함을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내가 그리 대하는 것이고, 사실 나 자신은 굉장히 차가운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차가와지고 싶다고 바란 것도 나이긴 하다. 불필요한 감정을 느끼지 않고, 남에게 휘둘리지 않도록.) 이 상태가 나쁜 건지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가끔 왠지 슬프긴 하다. (내가 원래?는 좀 더 따뜻할 거라는 전제 하에서의 얘기겠지만.) 아무렴 어때.